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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얻은들 소득이 무엇이랴
그것은 꿈이요, 한순간의 입김이다
덧없는 쾌락의 거품일 뿐
누가 일주일의 고통을 주고 한순간의 환락을 사랴
장난감 하나를 얻고자 영원을 팔아?
달콤한 포도 한 알을 얻기 위하여
덩굴을 모두 망칠 자가 누구랴
어떤 어리석은 거지가
당장 왕홀에 맞아 죽을 텐데 왕관을 만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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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포도 한알의 유혹에 덩굴을 망치고, 순간의 유혹에 영원을 망치곤 하는 이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막12:18)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때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의 특징은 개인이 아닌 그룹의 특징을 갖는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권위에 대해서,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세금에 대해서, 사두개인이 부활에 대해서 예수님께 묻는다.
이들의 질문들엔 적개심과 함정과 조소가 숨어있었다. 예수님께 대한 저항이 당시의 거의 모든 사회 그룹에서 일어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인이 그룹이 되면 다양성보다는 그룹의 지향점과 특성으로 더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룹의 입장으로 나올 때 그 개인의 자유스러움이 죽고 더 경직되는 것을 목격한다.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명처럼 그룹이 되면 비인격화되는 특성이 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함정을 파기 원했었지만 사실은 그들이 그룹의 함정 속에 빠져있었다. 그들 속엔 예수님께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었을 것이나 그룹의 힘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니고데모 같은 바리새인은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던가?
사람들이 모인 그룹은 창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동시에 악마화될 수 있다. 그리고 힘이 실려 그룹 속의 개인도 악마화될 수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 그룹에 종됨을 자주 교훈하셨다. 그룹속의 개인들이 힘과 권세에 관심을 갖게 되면 천국과 같았던 그룹이 지옥이 될 수 있음을 너무 잘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만나셨던 그룹과 다른 길로 가셨다.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가셨다. 한 알의 밀알처럼 죽으심으로 생명을 꽃피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