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눅1:58)
누가가 기억하는 예수사건은 긍휼의 사건이다. 누가복음 1장에는 유난히 '긍휼'이 많이 나온다. 사가랴에게 아들의 이름을 지으라고 했을 때, '요한'이라 지으라 했는데 그 뜻도 '긍휼을 입었다'는 뜻이다.
긍휼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마리아의 노래도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찬양인데(1:50,54), 메시아의 어머니 되는 자격을 자기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허락하셨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사가랴 부부도 아들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아들을 낳게 하셨다.
긍휼은 더 나아가 인생을 공평케 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말해준다. 인생이 불공평해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부한 자를 낮추시고 가난한 자를 들어쓰셔서 인생을 공평케 하신다.
무엇보다도 긍휼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우리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예수를 보내시고 세례 요한을 준비시켜주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셨음을 보여주신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는 사건은 긍휼 사건이다. 우리에게 긍휼이 아니면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누가가 기억하는 예수사건은 긍휼의 사건이다. 누가복음 1장에는 유난히 '긍휼'이 많이 나온다. 사가랴에게 아들의 이름을 지으라고 했을 때, '요한'이라 지으라 했는데 그 뜻도 '긍휼을 입었다'는 뜻이다.
긍휼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마리아의 노래도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찬양인데(1:50,54), 메시아의 어머니 되는 자격을 자기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허락하셨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사가랴 부부도 아들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아들을 낳게 하셨다.
긍휼은 더 나아가 인생을 공평케 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말해준다. 인생이 불공평해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부한 자를 낮추시고 가난한 자를 들어쓰셔서 인생을 공평케 하신다.
무엇보다도 긍휼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우리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예수를 보내시고 세례 요한을 준비시켜주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셨음을 보여주신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는 사건은 긍휼 사건이다. 우리에게 긍휼이 아니면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