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은 색달랐다.
이전처럼 조용한 입성이 아니라 왕의 입성을 연상시킨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입성전 마지막 비유가르침은 므나 비유였다.
므나 비유의 마지막은 "왕됨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였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였으리라.
우리들도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서는 아무 갈등없이 받아들이지만
왕되신 예수님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갈등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으로 입성하셨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입성은 좀 우스꽝스럽다.
백마가 아니라 나귀라니...
그러나 이것까지도 예수님의 깊은 의도가 숨겨있는 것 같다.
왕이시되, 겸손한 섬기는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
왕됨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되 우리에게는 근접할 수 없는 왕이 아니라
언제든지 가까이 갈 수 있는 왕으로 오신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BMW타시고 오신 것이 아니라 티코타고 입성하셨다.
폼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전달하시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누구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예수님.
예수님을 따라가는 한가지 의미는 ACCEBILITY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것..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실까?
이전처럼 조용한 입성이 아니라 왕의 입성을 연상시킨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입성전 마지막 비유가르침은 므나 비유였다.
므나 비유의 마지막은 "왕됨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였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였으리라.
우리들도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서는 아무 갈등없이 받아들이지만
왕되신 예수님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갈등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으로 입성하셨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입성은 좀 우스꽝스럽다.
백마가 아니라 나귀라니...
그러나 이것까지도 예수님의 깊은 의도가 숨겨있는 것 같다.
왕이시되, 겸손한 섬기는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
왕됨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되 우리에게는 근접할 수 없는 왕이 아니라
언제든지 가까이 갈 수 있는 왕으로 오신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BMW타시고 오신 것이 아니라 티코타고 입성하셨다.
폼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전달하시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누구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예수님.
예수님을 따라가는 한가지 의미는 ACCEBILITY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것..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