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9

시편 3편 친구들의 배신을 느낄 때


시편 3편의 표제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피신하면서 기록한 시이다.
본문을 보면 다윗은 단지 자기 아들이 자기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 보다는 많은 사람이 거기에 동조했다는 사실로 인하여 슬퍼한다.  1-2절에 "많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세번이나 등장한다.

인간사에 믿음을 주었던 이들의 등을 경험하는 것보다 마음 아픈 것이 없다. 자기의 친구들, 자기의 부하들이 자기에게 등을 돌리고 배신을 경험하면서 다윗은 아파한다. 예수님도 친구의 배신을 경험하셨다. 3년간 함께 지낸 제자 유다가 은삼십이라는 얄팍한 금전에 친구의 우정을 배신했다. 왜 주님이라고 안 아팠겠는가?  이점이 성경에 미리 예언된 것만 봐도 주님께도 매우 심각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그러나  이 상항에서 다시 일어나게 된다. 그의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을 바라보는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선의 전환을 단행하면서이다. 3절말씀에 "여호와여..."  그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렇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친구의 배신을 겪는 등 아픔을 경험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일어날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3가지를 묵상한다. 
첫째  하나님은 방패가 되신다.  방패는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다윗은 쫒겨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를 따르던 신하들도 불안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억하는 순간, 그 어떤 안전장치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안전지대인 것을 기억하면서 힘을 얻는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영광이시다. 다윗은 잠시 왕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도망자가 되어서 쫒겨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 와중에서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영광이 덧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생의 진정한 영광은 돈에 있지 않고 명예에 있지않다. 인간의 진짜 영광은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영광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시다. 어떤 배경이 될만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돕는 자가 되신다. 히스기야왕은 이 점에 있어서 실수 했다. 히스기야는 국가적 위기를 당하자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도움이 될수 있는 힘을 찾아다녔다. 이집트와 바벨론의 힘을 얻고자 했지만, 이것은 장기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짐이 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머리를 다시 드시는 분임을 고백한다.

이런 하나님께 대한 고백은 그에게 평안을 가져온다.
그래서 이제 "천만인이 자기를 둘러진친다 해도"  자기는 두렵지 않다고 고백한다. 그 위험한 정황에서 평안히 잠을 자고 일어난다고 고백한다.  이것이 신앙의 힘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 그리고 용기를 준다. 인생을 다시 힘내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