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의 소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승계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디가든 축복이 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자문해 봅니다.
나는 이웃에게 축복이 되는 사람인가?
솔직한 우리네 경험은
축복인줄 알았는데 저주가 되는 사람도 있고,
그냥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축복이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는 것은
내 선함만으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선하고 주님께 열심도 있는데 내게 저주가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내게는 까탈스러운 사람도
알고보니 내게는 축복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내 선함 이상의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인 것 같습니다.
"내가...하리라"는 하나님의 의지만이 신뢰할 수 있고,
사람이 어떠하다는 것은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그 주님의 은혜가 나를 사로잡아
이웃에게 진정 축복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승계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디가든 축복이 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자문해 봅니다.
나는 이웃에게 축복이 되는 사람인가?
솔직한 우리네 경험은
축복인줄 알았는데 저주가 되는 사람도 있고,
그냥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축복이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는 것은
내 선함만으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선하고 주님께 열심도 있는데 내게 저주가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내게는 까탈스러운 사람도
알고보니 내게는 축복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내 선함 이상의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인 것 같습니다.
"내가...하리라"는 하나님의 의지만이 신뢰할 수 있고,
사람이 어떠하다는 것은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그 주님의 은혜가 나를 사로잡아
이웃에게 진정 축복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