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장은 롯의 가문에 찾아온 비극을 보여준다.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고, 롯과 딸들은 소알 성에 머물다, 그것도 두려워 어느 산속 동굴 속에 숨어지내고, 후손의 단절을 두려워 비정상적으로 딸들은 아이들을 임신하게 된다.
이것은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을 떠날 때의 롯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때 롯은 넘쳐나는 가축떼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고,
신앙적인 아브라함의 양보로 일대에서 가장 좋은 땅들을 선택하고 거기 머물렀다.
그런데 롯의 일련의 선택의 과정을 보면 그의 선택은 물질주의적이다.
아브라함과는 달리, 그는 항상 물질적인 이득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요소들은 중요시 하지 않는다.
결국 소돔 성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 성은 매우 부패하고 문란한 도성이었다.
그는 이 성이 자기 가족에게 미칠 영향 보다는 이 성이 주는 매력을 더 중요시 여겼던 것 같다.
나중에 소돔 성문 앞에 앉아있는 롯의 모습도 보이는데, 고대사회에서 성문 앞에 앉아있다는 표현은 보통 그 성의 관리 혹은 유력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성공한 이민자였다.
그러나 물질을 추구하는 것의 끝은 비극이었다.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자신과 두 딸들은 아무 것도 없이 산속 동굴 속에 기거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물질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아무 것도 약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추구한 아브라함의 생애는 지금도 두고두고 귀감이 된다.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고, 롯과 딸들은 소알 성에 머물다, 그것도 두려워 어느 산속 동굴 속에 숨어지내고, 후손의 단절을 두려워 비정상적으로 딸들은 아이들을 임신하게 된다.
이것은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을 떠날 때의 롯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때 롯은 넘쳐나는 가축떼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고,
신앙적인 아브라함의 양보로 일대에서 가장 좋은 땅들을 선택하고 거기 머물렀다.
그런데 롯의 일련의 선택의 과정을 보면 그의 선택은 물질주의적이다.
아브라함과는 달리, 그는 항상 물질적인 이득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요소들은 중요시 하지 않는다.
결국 소돔 성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 성은 매우 부패하고 문란한 도성이었다.
그는 이 성이 자기 가족에게 미칠 영향 보다는 이 성이 주는 매력을 더 중요시 여겼던 것 같다.
나중에 소돔 성문 앞에 앉아있는 롯의 모습도 보이는데, 고대사회에서 성문 앞에 앉아있다는 표현은 보통 그 성의 관리 혹은 유력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성공한 이민자였다.
그러나 물질을 추구하는 것의 끝은 비극이었다.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자신과 두 딸들은 아무 것도 없이 산속 동굴 속에 기거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물질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아무 것도 약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추구한 아브라함의 생애는 지금도 두고두고 귀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