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시대 전후에 이스라엘의 영적 재건이 이루어졌다.
오랜 포로생활 가운데 있다가 포로들이 귀환할 수 있다는 명령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재건이 시작된 것이다.
본문에서는 몇가지 점을 지적한다.
먼저 영적 재건의 씨앗이되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바로 제사장들이다. 1기 포로귀환자들로서 스룹바벨과 함께 온 이들로서 예수아가 대표로하는 제사장들의 명단을 기록한다. 여기에 에스라도 포함되었지만, 특별한 언급은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후예로서 요아킴이 대표하는 제2기 제사장들의 명단이다. 제2기 제사장들은 모두 1기 제사장들의 자식들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이것이 바로 씨앗의 원리가 아닌가 싶다. 모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씨앗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1기 제사장 그룹은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최초 귀환자로서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은 모든 것을 개척해야했다. 그 개척의 시기에 그들은 초라하지만 성전도 재건했다. 그들은 느헤미야 8장 이후에 나오는 영적 부흥의 현장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부흥은그들이 씨앗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원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군가 씨앗이 되어주어야 그 다음세대라도 그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모두 영광을 바라지만 자신들이 씨앗이 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로 제사장들과 함께 레위인들이 언급되어 있다. 제사장들도 중요 인물들이지만 성전봉사에 있어서 레위인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제사장들은 부각되는 반면 레위인들은 잘 부각되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제사와 관련된 중요 직책을 맡지만, 레위인들은 주로 허드렛일들을 맡는다. 오늘날의 교회 상황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 어떤 사역과 봉사는 사람들의 부각을 받고 영광을 받는다. 반면 어떤 사역은 그늘질 사역이다. 그런데 오늘 똑같이 레위인들을 언급하는 것을 보라. 주님께서는 내 사역이 영광의 사역인가, 그늘의 사역인가 상관없이 똑같이 기억해 주신다.
셋째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동역이다. 그들의 주된 역할은 달랐다. 느헤미야는 주로 성벽재건과 체제정비의 역할을 맡았고, 에스라는 율법을 가르치고 영적 재건에 앞장섰다. 이들의 성격은 달랐다. 느헤미야는 과격하고 실제적인 반면에 에스라는 조용하고 학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동역했다. 이것을 동역의 원리라 부르겠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영적 재건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는 바로 이 동역의 원리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동역으로 하나님읜 나라를 펼쳐가신다.

오랜 포로생활 가운데 있다가 포로들이 귀환할 수 있다는 명령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재건이 시작된 것이다.
본문에서는 몇가지 점을 지적한다.
먼저 영적 재건의 씨앗이되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바로 제사장들이다. 1기 포로귀환자들로서 스룹바벨과 함께 온 이들로서 예수아가 대표로하는 제사장들의 명단을 기록한다. 여기에 에스라도 포함되었지만, 특별한 언급은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후예로서 요아킴이 대표하는 제2기 제사장들의 명단이다. 제2기 제사장들은 모두 1기 제사장들의 자식들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이것이 바로 씨앗의 원리가 아닌가 싶다. 모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씨앗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1기 제사장 그룹은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최초 귀환자로서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은 모든 것을 개척해야했다. 그 개척의 시기에 그들은 초라하지만 성전도 재건했다. 그들은 느헤미야 8장 이후에 나오는 영적 부흥의 현장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부흥은그들이 씨앗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원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군가 씨앗이 되어주어야 그 다음세대라도 그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모두 영광을 바라지만 자신들이 씨앗이 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로 제사장들과 함께 레위인들이 언급되어 있다. 제사장들도 중요 인물들이지만 성전봉사에 있어서 레위인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제사장들은 부각되는 반면 레위인들은 잘 부각되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제사와 관련된 중요 직책을 맡지만, 레위인들은 주로 허드렛일들을 맡는다. 오늘날의 교회 상황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 어떤 사역과 봉사는 사람들의 부각을 받고 영광을 받는다. 반면 어떤 사역은 그늘질 사역이다. 그런데 오늘 똑같이 레위인들을 언급하는 것을 보라. 주님께서는 내 사역이 영광의 사역인가, 그늘의 사역인가 상관없이 똑같이 기억해 주신다.
셋째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동역이다. 그들의 주된 역할은 달랐다. 느헤미야는 주로 성벽재건과 체제정비의 역할을 맡았고, 에스라는 율법을 가르치고 영적 재건에 앞장섰다. 이들의 성격은 달랐다. 느헤미야는 과격하고 실제적인 반면에 에스라는 조용하고 학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동역했다. 이것을 동역의 원리라 부르겠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영적 재건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는 바로 이 동역의 원리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동역으로 하나님읜 나라를 펼쳐가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