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5:2-12에서 사랑 때문에 주님은 나의 문을 두드리시는 분이심을 다시 보이셨다. 처음 주님 영접할 때 뿐 아니라, 주님의 나라 가기까지 주님은 계속 우리의 문을 두드리신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깊은 사랑의 교제를 위해서 두드리신다.
아가서의 신부는 악몽을 꾼다. 꿈 속에서 신랑은 밤이슬 맞도록 계속 문을 두드리지만, 신부는 왠일인지 일어나 문을 열지 않고 지체한다. 지체하다 다시 문 틈에 내어민 신랑이 손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문을 열지만, 그 때는 신랑은 이미 어디론가 가버리고, 뒤늦게 신랑을 찾지만 찾지 못하는 악몽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이일을 실제 일어나는 악몽인 경우가 많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더 깊은 교제요 사랑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신다. 그래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신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홀로 산책할 때에, 책을 읽을 때에, 어떤 일을 통해, 여러 경우를 통해 우리에게 문을 두드리신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지체할 때가 많다. 그러다가 주님과 더 깊어질 수 있었던 기회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은 지체하지 않고 응답하는 것이다.

아가서의 신부는 악몽을 꾼다. 꿈 속에서 신랑은 밤이슬 맞도록 계속 문을 두드리지만, 신부는 왠일인지 일어나 문을 열지 않고 지체한다. 지체하다 다시 문 틈에 내어민 신랑이 손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문을 열지만, 그 때는 신랑은 이미 어디론가 가버리고, 뒤늦게 신랑을 찾지만 찾지 못하는 악몽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이일을 실제 일어나는 악몽인 경우가 많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더 깊은 교제요 사랑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신다. 그래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신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홀로 산책할 때에, 책을 읽을 때에, 어떤 일을 통해, 여러 경우를 통해 우리에게 문을 두드리신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지체할 때가 많다. 그러다가 주님과 더 깊어질 수 있었던 기회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은 지체하지 않고 응답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