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8:5-12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묵상하게 된다.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당했다. 그런데 유다는 여전히 존속하여 앗시리아의 위기를 넘기게 된다. 남왕국 유다가 앗시리아에 맛설만한 힘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음의 본문은 제1차 앗시리아 침공을 받아 은금으로 간신히 달래는 유다의 유약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왕국이나 남왕국 유다나 앗시리아의 위세 앞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유다가 살아남은 것은 예레미야의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않았습니다"(렘애3:22-23) 노래한 것 처럼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다. 차이는 군사력이나 뛰어난 지도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그들의 의가 차이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었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더 도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남왕국 유다에게만 긍휼을 베푸셨는가? 하나님의 섭리를 다 헤아릴 수 없지만, 한가지 본문에서 확연히 발견할 수 있는 차이는 6절과 12절이다.
6절(히스기야에 대한 언급)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12절(북왕국 이스라엘) :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까닭은 우리가 자랑할 만한 어떤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이들은 누구든지 긍휼을 베푸신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긍휼을 가져오는 자'였고, 그로 말미암아 유다 민족엔 희망이 생겼다. 히스기야는 민족의 희망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런한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그들의 의가 차이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었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더 도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남왕국 유다에게만 긍휼을 베푸셨는가? 하나님의 섭리를 다 헤아릴 수 없지만, 한가지 본문에서 확연히 발견할 수 있는 차이는 6절과 12절이다.
6절(히스기야에 대한 언급)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12절(북왕국 이스라엘) :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까닭은 우리가 자랑할 만한 어떤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이들은 누구든지 긍휼을 베푸신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긍휼을 가져오는 자'였고, 그로 말미암아 유다 민족엔 희망이 생겼다. 히스기야는 민족의 희망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런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