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1:10-26에서 하나님 용서의 불가사의함을 주목하게 된다. 므낫세는 지극히 악한 왕이었다. 온갖 우상들과 산당들을 다시 세웠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상전에 이방신을 위한 제단까지, 그리고 "무죄한 자"들의 죄까지 흘려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했다고 본문은 말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회개하면 용서해주실까? 우리가 예상하듯이 용서하신다. 역대하 33장에서 므낫세의 또다른 스토리를 듣게 된다. 므낫세는 앗수르에 갈고리에 꿰어져 끌려가고 거기서 진심으로 뉘우쳐 회개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신다. 돌아온 므낫세는 자기가 세웠던 우상들을 허물어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것을 종용한다.
그런데, 때때로 악인이 쉽게 용서받는다는 사실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은 우리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차원의 심연이 있다. 때로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깊어 만져지지 않는다.
또 한가지, 하나님은 비록 므낫세를 용서해주셨지만, 그로 말미암은 유다 심판의 말씀을 거두지는 않으셨다. 개인적으로 므낫세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지만, 유다는 결국 하나님의 때에 멸망하게 된다. 다윗의 경우에도 그의 범죄를 용서하셨지만,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여기에 하나님의 용서의 또 다른 차원을 보게된다.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용서와 분명 다른 색깔의 그림이 있다.
주님과의 동행은 위험한 동행이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그 왕국의 진짜 주인은 아슬란 사자라는 말을 들은 루시는 비버 부부에게 묻는다."안전한가요?" "안전? 도대체 누가 안전 따위를 말하든? 그 사자는 평탄대로만 주지는 않아. 하지만 선하단다."
우리의 작은 소치로 주님 이해하며 따라가기가 평이하지 않다. 그러나 한가닥 잡는 것은 그분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 선 때문에 몰이해와 두려움 속에서도 안심하며 따라간다.
그런데, 때때로 악인이 쉽게 용서받는다는 사실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은 우리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차원의 심연이 있다. 때로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깊어 만져지지 않는다.
또 한가지, 하나님은 비록 므낫세를 용서해주셨지만, 그로 말미암은 유다 심판의 말씀을 거두지는 않으셨다. 개인적으로 므낫세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지만, 유다는 결국 하나님의 때에 멸망하게 된다. 다윗의 경우에도 그의 범죄를 용서하셨지만,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여기에 하나님의 용서의 또 다른 차원을 보게된다.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용서와 분명 다른 색깔의 그림이 있다.
주님과의 동행은 위험한 동행이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그 왕국의 진짜 주인은 아슬란 사자라는 말을 들은 루시는 비버 부부에게 묻는다."안전한가요?" "안전? 도대체 누가 안전 따위를 말하든? 그 사자는 평탄대로만 주지는 않아. 하지만 선하단다."
우리의 작은 소치로 주님 이해하며 따라가기가 평이하지 않다. 그러나 한가닥 잡는 것은 그분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 선 때문에 몰이해와 두려움 속에서도 안심하며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