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5:1-7에서 하나님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신앙이라 하신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반바벨론 정책을 폈다가 유다 왕중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두 아들이 눈앞에서 참살당하고, 본인은 두 눈이 뽑힌채 놋쇠사슬에 매여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수차례 시드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바벨론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메세지 대신 바벨론은 곧 멸망당할 것이며, 여호야긴(여고니야)와 함께 끌려갔던 모든 유다인들도 2년안에 돌아올 것이라는 조기 귀환의 희망을 전하는 메센저들의 메시지를 채택한다.
때때로 이것은 우리에게 곤란한 입장에 서게 만든다. 목회 초기에 암환자가 있었다. 치유와 기적의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그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그에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옳은가 고민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마음의 갈등이 여러 케이스에서 경험한다. 치유의 사역도 주께 속하였고 호스피스 사역 같은 것도 주께 속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
특정한 공식은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수학공식이 아니다. 우리와의 인격적 관계와 상황 가운데서 주시는 메시지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시드기야는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도 신앙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수차례 시드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바벨론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메세지 대신 바벨론은 곧 멸망당할 것이며, 여호야긴(여고니야)와 함께 끌려갔던 모든 유다인들도 2년안에 돌아올 것이라는 조기 귀환의 희망을 전하는 메센저들의 메시지를 채택한다.
때때로 이것은 우리에게 곤란한 입장에 서게 만든다. 목회 초기에 암환자가 있었다. 치유와 기적의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그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그에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옳은가 고민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마음의 갈등이 여러 케이스에서 경험한다. 치유의 사역도 주께 속하였고 호스피스 사역 같은 것도 주께 속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
특정한 공식은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수학공식이 아니다. 우리와의 인격적 관계와 상황 가운데서 주시는 메시지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시드기야는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도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