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3:25-30에서 요시야 개혁의 실패를 통해서 교훈하시다. 요시야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25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이집트와의 전투에서 전사함으로 요시야 개혁은 거기서 그치고 말았다. 실패한 개혁이었다. 왜 요시야 개혁은 실패했을까?
한가지 이유는 마음이 공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발견된 여호와의 말씀에 요시야 왕은 마음에 불이 붙었지만, 백성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왕이 소집한 모임에서 백성들은 왕이 명령에 따라 우상을 버리기로 언약을 세웠지만, 백성들의 마음 속에 여호와 신앙이 일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느헤미야-에스라 부흥은 그들이 수문 앞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할 때에 온 백성이 울고 회개하며,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더 듣고 배우고자 하고, 에스라의 가르침에 따라 대대적인 초막절 행사를 갖는다. 요시야 개혁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지만, 거기에서는 백성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심령의 부흥,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은 개혁은 늘 실패하기 마련이다. 외적인 시스템을 바꾸고 행정을 개편하고, 교회에 새로운 체제를 가져오는 것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부흥과 회개가 먼저 선행되지 않는 한 어떤 부흥운동도, 개혁도, 그리고 교회의 사역도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요시야 개혁 이후에 일어난 예레미야는 유다 말기에 "새언약"의 날이 도래할 것을 예언하며, 마음에 새겨진 여호와의 말씀만이 진정한 희망이 될 것을 예언한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3장에서 이 새언약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시는 역사라고 했다.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우리들의 마음을 터치해주시기를 위해 먼저 기도해야한다.
또 한가지 요시야 개혁의 실패 요인으로는 아마도 하나님의 섭리의 무게추가 심판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본문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26절). 므낫세 뿐 아니라 유다 선왕들이 쌓아논 악 때문에 유다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가벼렸다. 요시야의 대대적인 청결작업에도 불구하고 훌다를 통해서 말씀하신 심판의 메세지는 거두지 않으셨다. 이미 심판은 작정되었다. 무게추는 심판으로 기울었다.
이것이 나를 두렵게 하는 요소이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고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용서를 구하면 언제든지 용서해 주신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의 무게추에 의해서 비극적인 결말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잘못하면 용서해 주신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지 않으실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두려움이다. 아마 바울이 '복음을 전한 수에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한다는 얘기가 그것이 아닐까? 그것이 왕성한 사역을 하던 중 어떤 스캔들을 인해 회개하고 돌아온 목사님들이 예전처럼 그렇게 쓰임받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시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더 이상 주님께 쓰임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그리스도인의 최대 비극은 더 이상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를 순전하게 추스려야 한다.
한가지 이유는 마음이 공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발견된 여호와의 말씀에 요시야 왕은 마음에 불이 붙었지만, 백성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왕이 소집한 모임에서 백성들은 왕이 명령에 따라 우상을 버리기로 언약을 세웠지만, 백성들의 마음 속에 여호와 신앙이 일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느헤미야-에스라 부흥은 그들이 수문 앞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할 때에 온 백성이 울고 회개하며,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더 듣고 배우고자 하고, 에스라의 가르침에 따라 대대적인 초막절 행사를 갖는다. 요시야 개혁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지만, 거기에서는 백성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심령의 부흥,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은 개혁은 늘 실패하기 마련이다. 외적인 시스템을 바꾸고 행정을 개편하고, 교회에 새로운 체제를 가져오는 것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부흥과 회개가 먼저 선행되지 않는 한 어떤 부흥운동도, 개혁도, 그리고 교회의 사역도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요시야 개혁 이후에 일어난 예레미야는 유다 말기에 "새언약"의 날이 도래할 것을 예언하며, 마음에 새겨진 여호와의 말씀만이 진정한 희망이 될 것을 예언한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3장에서 이 새언약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시는 역사라고 했다.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우리들의 마음을 터치해주시기를 위해 먼저 기도해야한다.
또 한가지 요시야 개혁의 실패 요인으로는 아마도 하나님의 섭리의 무게추가 심판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본문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26절). 므낫세 뿐 아니라 유다 선왕들이 쌓아논 악 때문에 유다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가벼렸다. 요시야의 대대적인 청결작업에도 불구하고 훌다를 통해서 말씀하신 심판의 메세지는 거두지 않으셨다. 이미 심판은 작정되었다. 무게추는 심판으로 기울었다.
이것이 나를 두렵게 하는 요소이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고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용서를 구하면 언제든지 용서해 주신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의 무게추에 의해서 비극적인 결말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잘못하면 용서해 주신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지 않으실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두려움이다. 아마 바울이 '복음을 전한 수에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한다는 얘기가 그것이 아닐까? 그것이 왕성한 사역을 하던 중 어떤 스캔들을 인해 회개하고 돌아온 목사님들이 예전처럼 그렇게 쓰임받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시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더 이상 주님께 쓰임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그리스도인의 최대 비극은 더 이상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를 순전하게 추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