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9:21-27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게 두가지 교훈을 주셨다.
첫째는 힘겨운 때에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욥의 고난 속에 가장 위로가 되어야 마땅했던 친구들은 판단자들이었다. 그냥 욥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우는 심정으로 같어있어주기보다는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관, 세계관, 경험과 판단으로 욥의 문제를 해석하였다. 그래서 욥은 "나의 친구야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21절)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우리가 일상 경험하게 된다. 목장모임에서 한 지체가 기도제목을 나눌 때, 조용히 들어주고 심정을 헤아려주기 보다는 자신들의 의견과 해석을 늘어놓기 일쑤다. 심지어 부부간에도 고요히 들어주기 보다는 우리 인간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보다는 자꾸 해석하려고만 해서 서로가 외롭다.
둘째는 하나님의 침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고난의 때에 힘든 것은 사실 고난 그 자체보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는지 헤아리기 어려울 때이다. 욥도 다가온 고난 그 자체는 욥기 1-2장에서 이미 해결되었다. "빈 손으로 왔으니 빈 손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정리했다. 문제는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을 허용하셨는가는 마지막장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였고, 그것이 욥을 괴롭힌 문제였다.
때로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끌어안고,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대답으로 혼란스러워한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가? 주께 질문하지만 주님은 대답을 아니하신다. 도무지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욥은 "나의 구속자는 살아계신다"는 믿고, "마침내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25절) 믿는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언젠가는 말씀해주실 것이라는 믿었다. 그리고 이땅에서 들을 수 없으면 "육체 밖에서" (26절) 주님을 만나게 되고 우리가 들을 수 없었던 주님의 대답을 듣게 될 것을 믿었다. 실제로 욥은 욥기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의 대답을 들었다.
하나님의 침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박국이 파수대에 올라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듯이 주께 쏘아올린 나의 질문들에 대해 언젠가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려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