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5:1-8은 교회 내에 발생한 성적 범죄를 다룬다.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오늘의 교회 안에서는 많은 성적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점에서 과연 교회가 세상의 다른 집단과 차별성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심지어는 "이방인 중에도 없는" 부끄러운 모습들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한국의 한 대형교회의 목사에게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그를 옹호하는 글들과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그 사건을 지켜보면서 오늘의 바울이 지적하는 한가지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고린도 교회나 오늘의 교회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의 대중문화는 성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스도인들도 사랑과 성에 대해서 성경에서 배우기 보다는 세상에서 배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그저 있을 수 있는 실수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는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심각성의 수위는 어느 정도인가? 당사자 뿐 아니라 온 교회가 이 문제로 함께 "통한히" 여겨야 했어야 했고, 그를 교회에서 "쫒아내야" 마땅했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비록 자기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심판한다고 매우 강력하게 말한다. 이 문제를 다루는 성경의 수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교회 내의 성적 범죄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며, 조금도 허용하는 분위기를 가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 징계와 근신의 전통이 회복되어야할 이유이다.
'깨진 창' 이론이 있다. 어느 집에 깨진 창을 그대로 나두면 다른 창들도 다 깨지게 된다는 이론이다. 사람들은 그 집에는 돌던져 창을 던져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깨진 창을 그대로 나두면 교회의 다른 창들도 다 깨어지게 된다.
그 대형교회 목사의 사건이 있은 후 어떤 글이 나의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그 목사님이 빨리 회복되어 다시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제발 빨리 나타나지 말고 오랜 침묵과 회개의 기간을 가지며, 하나님이 오늘의 교회에 얼마나 거룩을 요구하시는지 그 산증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