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1

육신의 봉사자들

출2:11-15의 말씀을 통해서 육신으로 하는 봉사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모세는 하나님을 위해서 혹은 민족을 위해서 선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선한 뜻으로 시작한 것이 살인으로, 그리고 그를 도망자로 만들었다.

종종 선한 뜻으로 시작한 일들이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상처내고 선한 뜻을 가진 우리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까지도 발생한다. 즉 사람을 살리는 봉사가 아니라 죽이는 봉사가 된다. 교회가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을 숨막히게 하고 자유대신 속박을 주는 경우도 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육신으로 하는 봉사가 있고 성령으로 하는 봉사가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육은 무익한 것이요 살리는 것이 영이라고 하셨다. 성령으로 하는 봉사는 사람을 살리지만, 육신의 봉사는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육신의 봉사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바울은 자신이 회심하기 전에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했다고 했다. 그의 열심은 율법에 대한 확신에 기초하였고, 성령이 그의 눈을 열어주지 못했을 때에 교회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배반자로 비쳐졌다. 열심이 그를 핍박자로 만들었고,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를 십자가 처형을 감행하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말씀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 보다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무기로 돌변하는 경우들이 많다. 말씀을 알되 성령의 비춤을 받지 못할 때, 그 말씀으로 사람을 죽이는 경우들도 많았다.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으로 종종 예수와 그 제자들을 비난하곤 했었다.

육신의 봉사란 성령을 의지하는 대신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겸허히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 보다 자신의 경험과 능력과 아이디어를 따라 하게 될 때 우리는 육신의 봉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성령은 우리의 아이디어 등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성령에 민감하게 귀기울이지 못하면 성령이 인도하시는 방향과 정반대로 우리의 아이디어를 사용할 수도 있고 나도 작은 목회의 경험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은 결정들이 영혼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를 깨뜨리시는 작업을 하신다. 도망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에서 보낸 40년은 모세의 모든 자신감이 깨지는 시간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들을 하나님이 바울이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를 깨뜨리시는 방망이로 이해했다. 우리의 육신은 깨어져야 한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를 깨뜨리시기 위해 쓰시는 방법들은 무엇인가?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을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서 사람들을 살리는 영혼의 치유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