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11

축복의 자리

출12:29-36은 드디어 열번째 재앙이 애굽에 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애굽의 모든 백성들 뿐아니라 가축들에게도 재앙이 임했다. 그런데 그 가축들은 애굽인에게 속했다는 이유로 처음 것들이 죽임을 당했고, 이스라엘의 가축들은 그 주인에게 속했기 때문에 죽임을 면했다. 가축들의 허물 때문이 아니었다.

축복의 있고 없음은 꼭 개인의 윤리성이나 신앙 때문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크게는 어느 공동체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애굽인들은 바로에게 속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는데, 애굽인 중에는 개인적 의가 이스라엘의 어떤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분명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나 그 가축들이 저주받는 것은 그들이 축복의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개인적 의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을 따를 동안에는 축복을 받아 아브라함과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할 정도로 가축이 많아졌다. 그가 축복받은 이유는 단 한가지.. 그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축복의 자리에 있었기에 덩달아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면 어디가 축복의 자리일까? 시편1편은 두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죄를 멀리하는 곳, 둘째는 말씀을 가까이 하는 곳이다. 누군가 죄를 멀리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이가 있다면 그와 가까이 하라.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실 때 여러분도 덩달아 축복하시리라. 어딘가 잘되는것 같은데 내막에 부정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것이 계속되고 있다면 그곳을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그곳을 떠나라. 외형상의 잘됨이 하나님의 축복의 싸인은 아니다. 애굽인들은 외형상 화려했던 이집트 왕조의 백성임에 자부심 느꼈을지 모르지만, 축복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이었다. 애굽의 가축은 축복의 자리에 있지 못해 죽임을 당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소명은 누군가에게 축복의 자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이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도록 우리가 축복의 근원이 되기를 기도하자. 우리의 신앙 공동체가 그런 공동체이기를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