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행4:13)
그들은 새로 나타난 신흥종교를 학문적으로 검증해 보기 원했다. 그래서 최고의 학자 가말리엘까지 대기시켰다. 그러나 소환된 베드로와 요한은 학문적으로 논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딜렘마는 이 학문없는(unschooled) 사람들을 통해 나타난 기적을 부정할 수 없었다는데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이들을 오히려 닮은 듯 하다. 목회자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그의 학위인 것 처럼, 목회자 초빙의 내부조건을 아예 "박사"로 한정하는 교회도 꽤 있다. 목회자들도 학위를 갖추기 위해서 심지어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 혹은 매우 쉬운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의 이런 심리를 장사속으로 이용하는 해외 신학교들도 많이 있다. 물론 학위는 거기에 걸맞는 연구와 노력과 성과가 있을 때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학위가 능력이 되지는 못한다.
본문에서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있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제대로 보았다. 목회자의 능력은 예수와 함께 있는 시간이다. 교회의 힘은 예수의 임재다.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혹은 삶의 일상에서 예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하는 것이 우리 힘의 원천이다. 우리에게 그분과 동행하는 시간은 삼손의 머리카락 같은 것이다. 그것이 밀리워지면 세상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이들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