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26-40 말씀에서 항상 순종에 대한 도전을 받으며, 이 말씀은 내가 중요한 결정을 앞둘 때 항상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빌립에게 배우는 순종의 첫번째는 내려놓음이다. 사마리아 부흥은 빌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마리아에서 빌립은 크게 쓰임받았다. 그런데 주의 영은 그를 갑자기 광야로 인도하셨다. 순종은 내 성공적인 사역까지도 내려놓는 것이다.
그에게 배우는 순종의 두번째는 광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령이 인도하신 땅은 광야의 땅이었고, 사역지로서는 매력없는 땅이었다.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은 단 한사람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큰 그림으로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부르신다. 인도받은 곳에서 사역의 결실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을 회심시키는 사마리아 부흥이 재현되지도 않고 다만 한 사람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순종은 광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한가지 그에게 배우는 것은 순종은 빈손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39절 말씀은 "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고 되어있다. 한 사람을 결실했는데, 그것도 길 위에서 잠시, 다시 그를 보지 못했다. 사역의 결실이 보존된 것도 아니고 "이는 내 제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시 빈손이 되었다. 성령은 때때로 우리를 빈손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그것이 우리를 곤혹스럽게도 하고, 현재 사역에 회의를 갖게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걸어야 할 순종의 자리다.
약 8년전에 뉴질랜드 해밀턴의 사역제의를 받았을 때, 그곳은 교민이 아주 작은 지역이었다. 그때 이 말씀은 내게 도전이 되었다. 빌립을 흉내내듯 옮긴 발걸음에서 준비된 영혼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하나님께 쓰임받음에 그저 감사했다. 또 다시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지금의 자리로 인도하셨다. 여전히 지금의 내 기도제목은 본문의 발견한 두가지 기도제목이다.
하나님, 이디오피아 내시 같이 말씀에 갈급하고 사모하는 영혼, 한 사람이라도 좋사오니 만나게 하옵소서.
하나님, 빌립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던 것 같이 끝까지 예수만 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