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11

불편한 친구, 오해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행11:2)

오해는 불편한 친구와 같다. 매우 불편하지만, 인생 중에 피할 수 없는 악연의 친구와 같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을 인도하는 일에 쓰임받았다. 그러나 유대인이 이방인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 뿐 아니라 동료 사도들과 형제들에게도 비난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주님 따라가다 보면 이런 일들은 반드시 일어난다. 비록 하나님의 인도하심,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일에 관련된 일들이 일의 전후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대단한 오해를 야기기키고 비판받는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다행히 베드로의 경우는 베드로의 간증으로 오해가 풀리고 다른 형제들도 같은 마음을 품고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도다"(행11:18절).

그러나 많은 경우 오해가 풀리지 못하고 계속 비난받는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할 수만 있으면 속이라도 뒤집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오해는 불편한 친구와 같은 것, 우리가 주님 따라가면서 함께 가야하는 친구와 같다. 내가 감수해야만 하는 오랜 친구처럼...

영화 뷰티플 마인드에서 주인공 존 내쉬는 정신착락을 경험한다. 늘 쫒아다니는 대학친구와 어느 소녀의 환상을 갖게된다. 결국 내쉬는 마지막까지 정신착란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천재적인 강의를 대학에서 계속하게 된다. 하지만 대학친구와 어린 소녀의 환영는 시시때때로 그를 찾아온다. 달라진 점은 그 환영을 없애려 하지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처럼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님 따라가다 보면 쫒아내고 싶은 환영들이 있고,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는 것들이 있다. 오해도 그러하다. 그것마저도 친구처럼 대하는 것 밖에 없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