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7장에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는 한 사례로 미가의 일을 말하고 있다. 미가의 어머니는 잃었던 돈을 되찾은 기쁨으로 그 돈의 일부를 여호와께 드리기를 원했다. 이에 미가는 자기를 위해 신상을 만들고 자기 집에 신당을 만들고, 미가는 스스로 제사장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여호와를 위한 것이라 믿는다. 미가의 종교는 자기를 위한 종교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미가의 종교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가는 또 드라빔을 만들었다. 라헬이 안장 밑에 숨길 정도로 드라빔은 작은 신상이었다. 우리는 인형같은 하나님,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처럼 만지작 거릴 수 있는 하나님을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거기서 내가 원하는 메세지를 얼마든지 선택하여 들을 수 있고, 우리는 공동체에 참여함없이 해변가에서, 낚시터에서, 골프장에서 스마트 종교로 주일예배를 대신할 수 있다. 물론 스마트 종교에서는 전국의 예배실황을 골라서 드릴 수 있다. 예배가, 혹은 설교가 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교회 예배를 선택해서 다른 설교를 들을 수도 있다. 스마트 종교에서는 공동체에서 오는 갈등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 종교에서는 미가가 자기를 위해 신상을 만들었듯이 자기를 위한 하나님을 만들어가게 된다.
미가의 종교시대에, 스마트 종교시대에 우리는 다시한번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