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은 이름 뜻 그대로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에 평강의 왕을 상징하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다. 유대 왕들은 전시에는 말로, 평화시에는 나귀를 타고 왕의 행차를 하곤했다. 나귀를 선택하심으로 전장의 예수가 아닌 평화의 예수로 각인되기를 원하셨다.
반면 백성들은 종려가지로 예수를 맞이한다. 유대인들에겐 종려가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오랜 외세의 침략 가운데 잠시 독립운동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그 주역이었던 마카비 일가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백성들은 종려가지로 그들을 맞이했다. 종려가지는 승리와 해방을 상징한다. 예수는 나귀를 통해 자신의 평화의 메시아임을 각인시키기를 원하셨고, 백성들은 승리와 해방의 메시아를 믿고싶어했다.
사람들은 믿고싶은 바를 믿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에는 다른 이미지로 예수의 이미지를 둔갑시켜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구원의 선물은 믿지만, 제자도의 헌신은 믿고싶어하지 않는다. 치유와 위로의 주님은 믿고 싶어하지만, 상처입은 치유자로 교회와 가정 속에 머물러 있기원하시는 주님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말씀을 사모한다 말하지만, 우리가 의미하는 '말씀'이란 내 기호와 욕구를 만족시켜줄 말씀만을 의미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런 말씀을 향해 끊임없이 교회를 떠도는 혼령같은 신자들도 많이 보게된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향해 흔드는 우리의 종려가지는 예수를 향한 찬미가 아니라 내 야망과 염원을 향해 흔드는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