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6/12

도피성이 있는 사회가 아름답다

신명기 19:3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도피성이 있는 사회가 아름답다.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은 정의다. 그런데 정의의 하나님은 도피성을 마련하신다. 도피성은 정의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정의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최상의 대답이 아님을 보여주셨다. 그분은 이 여인에게 용서의 도피성을 제공하셨다.

죄인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기준으로는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의 도피성을 마련하셨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항상 "옳은" 문제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그 옳은 문제가 항상 누군가를 정죄하는 도구가 되곤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은 제사가 아닌 긍휼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많은 경우 교회 공동체는 "옳은" 것을 말하는 이들로 인해서 고통을 겪는다. 그러
나 주님은 우리가 그 이상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신다. 도피성이 있는 공동체가 아름답다. 죄와 실수와 허물이 있는 사람들도 피할 곳이 있는 사회가 아름답다. 죄를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인간은 정의로만은 갈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티모데 켈리 목사는 그의 저서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성경의 정의는 긍휼을 품는 것이라 했다.

우리의 공동체에서 도피성을 보았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누군가에게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는 도피성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