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12

상징과 이미지



신앙은 어떤 상징들을 가지고 있다. 십자가나 세례/침례, 주의 만찬 등은 보다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상징들이다. 할례는 유대인과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상징은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상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들이 퇴색되는 경향이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한 최초의 일은 할례를 시행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표시였다. 그런데 로마서 2장에서 할례의 의미가 퇴색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로마서 2장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할례받은 백성인 것을 자랑하지만, 실상은 전혀 하나님을 믿는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발한다(25-29절). 그들에게는 상징만 남았다.  이런 경우 상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상징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 중에 한가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이미지다. 바리새인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우리에게는 '위선적 이미지'가 떠오르겠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경건한 이미지'였던 것 같다. 그들은 철저한 십일조 생활과 안식일 준수 등에 있어서 일반 신도들보다 엄격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주었다.

문제는 그들의 이미지와 삶이 별개 였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경건한 이미지를 위해서 회당에서 오래 기도하고 자주 금식하고 구제에 힘썼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그들은 위선자라고 했다.


자칫하면 우리는 신앙의 내용 보다 그 상징에만 집착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할례에 집착했지만, 유대인다운 삶을 잃어버렸다. 바리새인들은 경건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보다 중요한 의와 신과 애를 잃어버렸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상징을 붙들고 있으면서 자신의 삶의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맹목성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2장의 유대인들은 자신의 삶의 모순에는 눈감은채 그들의 상징물에 매달렸고 그것으로 만족해 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근사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갈채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이와 상반될 수 있고, 그것을 보지 못하는 맹목성의 함정에 빠져들 수 있다.

본 훼퍼는 나찌 정권에 저항하다 순교한 믿음의 사람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의 삶이 "값싼 은혜"의 논리에 빠져 제자도를 잃어버렸다고 그의 책 "나를 따르라"에서 저술하고 있다. 당대에도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목사님이시다.  그도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서 쓴  "나는 누구인가?" 라는글의  한 대목은 이렇다.

"...
남의 말의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든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약한 나 목을 졸린 사람처럼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나 색과 꽃과 새소리에 주리고 좋은말 따뜻한 말동무에 목말라 하고 방종과 사소한 굴욕에도 떨며 참지 못하고 석방의 날을 안타깝게 기다리다 지친 나 친구의 신변을 염려하다 지쳤다 이제는 기도에도, 생각과 일에도 지쳐 공허하게 된 나다 이별에도 지쳤다.... 이것이 내가 아닌가?"


어쩌면 본 훼퍼를 그 답게 만든 것은 죽는 그날까지 자기 자신을 치열하게 들여다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모습으로 주 앞에 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