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 11월 10, 2012
내 신앙의 여정을 돌이켜 보면 몇몇 주제는 반복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수면으로 나타나곤 한다. 그 중 회심, 제자도,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는 나와 교회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마다 계속 곱씹어 보게만드는 주제들이다.
이제까지 내가 견지해왔던 회심에 대한 입장은 종교성과 대비된 회심이었다. 나 자신도 그러했고 주변에서도 교회생활을 단지 종교성의 차원인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회심은 분명 종교성과는 다른 차원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이 만남이라는 사실을 믿었고 가르쳤고 설교해왔다.
로마서 3장에서 바울이 가르치는 회심도 분명 종교성과 대비된 회심이라고 믿는다. 바울이 율법이 아닌 믿음을 강조했던 이유도 유대인들의 종교적 행위들을 의지하는 것이 구원을 보장해주지 못함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회심은 인간의 종교성과는 다른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롬3:24)
그런데 이런 회심관에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끼곤 한다. 나를 포함해서 자신의 회심을 확신하는 이들 속에 나타나는 도덕적 무력감과 실패, 그리고 얕은 수준의 인격과 삶을 지속적으로 목격하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회심이 이런 정도의 결과만 산출하는 것이라면 기독교 복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일까?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로마서에서 바울이 회심을 가르칠 때 사용했던 "의"라는 단어이다. 로마서에서의 바울의 구원관의 핵심은 바로 이 "의"라는 단어이다. 로마서 3:20절이하에서 거의 모든 구절에서 "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다분히 구약적 배경을 가진 단어이다.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이상이다. 구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경건한 삶의 총체를 가르치는 것이다.
회심은 우리를 의로운 삶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만약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하나님의 "의"와 무관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믿음의 진정성을 신용하기가 어렵다. 회심은 어떤이들에게는 바울처럼 한 순간의 결정적 순간에 이루어지지만, 내가 보기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처럼 그리스도와의 동행을 시작하는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회심과 제자도는 절대 구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