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13

불편함

마3:1-12의 침례 요한은 우리들에게 불편하다. 메시야의 길을 준비한 자로 언급된 그가 광야에서 활동하고 지극히 단순한 삶을 살아가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청중들을 위로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회개의 메세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의 설교자들과 정반대의 길로 나갔다.

사람들이 많이 모을 수 있는 곳이 그의 사역지가 아니었다.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는 예루살렘이나 다른 도시로 가야했다. 그의 사역은 생활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곳이 아니었다. 그의 메세지는 당시의 회중들에게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부하던 이들에게 그리 생각지 말라 한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될 때 시행되던 침례를 유대인들에게 베풀면서 회개하고 나온 자만이 참 유대인이 될 것을 선포한다. 그의 메세지는 당시의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런 침례요한은 우리들에게도 불편하다.

물론 하나님의 소명의 길이 각자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요한은  우리들에게 헌신의 원형(prototype)을 보여준다.  광야,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함을 보여주며, 메뚜기 석청 낙타옷, 이것은 아무런 생활의 보장이 없어도 주님께서 부르시면 순종해야 하며, 그의 메세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메세지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해도 가감없이 전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헌신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불편함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