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13

흉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마11:8)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기대는 다양하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교회의 교회됨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침례 요한이 부드러운 옷 입은 귀족의 패션쇼를 보여줄 수는 없다. 예수님은 그걸 보고 싶으면 왕궁에 가라 하신다.

사람들은 웃음을 찾고 있다. 그걸 보고 싶으면 개그컨서트나 드라마를 보면 된다.사람들은 퍼포먼스를 좋아한다. 그걸 보고 싶으면 뮤지컬이나  음악 컨서트에 가면 된다. 그들이 확실히 교회보다 낫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왔는가?"  교회에 나오는 이들이 들어야 할 질문이다.

"너희가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교회가 들어야 할 질문이다.

교회가 왕궁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순간 교회는 맛잃은 소금이 된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옷을 보고자 침례 요한에게 갔던 것이 아니다. 침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패션쇼를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그는 우스운 꼴이 되고만다.

침례 요한은 그만이 들려줄 목소리가 있었다. 회개를 외치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민중들의 마음을 끌었다. 몌시아의 도래를 선포하는 목소리에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교회는 교회만이 내야할 소리가 있다. 첼로가 기타를 흉내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첼로 연주회에 가는 이유는 기타 소리를 듣고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