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라쉬 2월 21, 2013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마12:7)
제자들이 안식일에 길가다 벼이삭을 비벼 먹었다. 이것은 곧 사람들의 비판거리가 되었다.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다윗의 경우와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의 예를 들어 제자들의 행위가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들고나온 안식일 문제는 율법의 문제가 아닌 전통의 문제였다. 그들은 안식일의 수호자로 자처했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가미시켰다. 이들의 토라(율법)에 자신들의 해석을 담을 미드라쉬(해석집)를 더하여 미드라쉬에서 정한 안식일 준수 규칙을 "율법"준수로 예수님은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장로의 전통"이라고 비판하신 적이 있다(마가복음 7장)
오늘의 기독교계에는 다시 복음과 제자도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그동안의 치유와 번영 중심의 메시지에 식상한 대중은 또 다른 맛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된 복음과 제자도에 대한 우리의 소위 "성경적" 논의가 실상은 또 다른 미드라쉬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와 개혁에 대한 외침들이 안식일 준수를 외치는 외침과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명분은 정의롭다. 그런데 그 외침엔 우리들의 미드라쉬가 많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소위 복음을 말한다는 이들의 미드라쉬를 복음자체와 동일시할 수 있다. 미드라쉬를 가진 사람들의 눈에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듯이, 사람들의 눈에 오늘의 교회는 복음이 빠진 장사꾼 교회들로만 여겨질 수 있다.
미드라쉬 자체가 악이 아니고 오늘날 복음적 설교가들의 설교와 책자들은 절대 악이 아니다. 그러나 그 미드라쉬가 정죄의 수단이 되면 악이다.
복음을 사랑한다고 하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교회들에 대한 정죄의 마음이 있다면, 안식일 준수 문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판했던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한국 교회를 비판하고 염려하는 듯 하면서 자신을 차별화 시키는 것은 안식일 준수를 자기 의로 삼았던 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복음과 영성이 따뜻하기를 기대하셨다.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한다. 구약 선지자들의 비판적 선언들에는 이스라엘을 마음에 품은 선지자들의 깊은 고뇌가 묻어있다. 우리들의 복음에 대한 논의와 외침에는 한국 교회를 끌어안는 자비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