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
C.S. 루이스는 우리에게 익숙하여 그 중요성과 진정한 뜻을 지나쳐버리는 본문이 오늘의 본문이라 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병을 고치고 도와주는 선한 예수는 사람들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가 중풍병자에게 "네 침상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었다. 사람들은 곧바로 신성모독이라고 시비를 걸었다. 죄사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성인 예수, 선한 예수, 스승 예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예수는 곤란하다. 선한 예수는 좋아하고 추종하면 그만이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무릎을 꿇어야 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고, 그분께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곤란하다. 예수를 좋아하지만,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 '신성모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진짜 신성모독은 하나님되신 예수님을 선한 예수님 정도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 신성모독이 우리 주변에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한다.
C.S. 루이스는 이 말을 들은 이상 우리는 선택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하신 예수를 미친사람 취급하든지, 종교적 사기꾼으로 여기든지, 아니면 그분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든지 해야한다. 어중간하게 예수님을 좋은 분이라고 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