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13

편리성을 넘어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

우리는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주고 싶어한다. 편리성 추구에서 많은 발전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편리성 제공을 섬김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도 그 편리함을 주기 위해 많은 서비스를 한다. 편안한 주차, 설교를 돕는 영상과 미디어 사용, 교회 사역을 세세히 안내해주는 각종 안내문들 그리고 스마트 서비스들....

아무리 그래도 복음은 쉬울 수만은 없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아무리 많은 편리함을 준다해도 복음은 우리를 어려운 대목으로 인도한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처럼
어려운 복음의 난제가 있다. 어떤 청년이 복음과 함께 반드시 직면해야했던 문제가 있었던 것같이, 우리들이 부딛혀야할 영역들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재물일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복음은 결단을 요구한다. 예수님은 그것을 양보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복음은 어렵다. 쉽지 않다. 복음에는 낙타의 바늘귀처럼 어려운 숙제를 준다. 복음의 문은 좁다 하셨다. 복음의 진면목을 대하면 제자들처럼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마19:25)라고 질문하게 된다. 복음은 비수처럼 우리를 찌르고 우리의 거짓 고백을 고발한다. 복음은 우리에게 영혼의 고통을 안겨다 준다. 깨어짐 없이는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 길이 쉽지 않다 하신다. 오히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꾀를 낸다. 초등학생이 어려운 산수문제를 끙끙거리며 풀려하지 않고 계산기의 힘을 빌어 답을 내듯이 사람들은 쉬운 답을 찾고자 하고 교회는 주려한다. 우리는 쉬운 답에 익숙해져서 어려운 문제를 내는 교회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그러나 계산기만을 의지해서는 성장이 없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복음이 주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내야 한다.

그 숙제가 무엇일까? 우리의 영혼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