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마21:43)
마태복음 21장의 예수님의 비유에서 농부들은 주인에게 농지를 위탁받는다. 그러나 농부들은 위탁받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을 벌이게된다. 주인에게 반항하고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려 보내고 심지어 주인의 아들을 살해하고 만다.
이것은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들에게도 정확히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게 무언가를 위탁받았다. 야고보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약1:17)라고 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위로부터 위탁받는 것이다. 우리는 위탁받는 청지기들이다. 우리의 시간과 재물은 위탁받는 것들이며, 우리의 재능과 권한은 주인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다. 죄는 이런 청지기직의 소임을 망각하고 자신이 주인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존재는 농부들에게도 걸림돌이 되고 우리들에게도 걸림돌이 된다. 예수님은 자신이 주인되심을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내 수중에 있는 재물을 내것이라 하고 싶은데 예수는 자신의 것이라 말씀하신다. 내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는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라 하신다. 문 밖의 떨고 있는 이웃을 돕고 안돕고는 내가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는 그분이 결정하실 문제고 우리는 그를 따라야 한다고 하신다. 자녀들에게 학원을 보내고 안보내는 것쯤은 내가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는 우리 자녀의 주인이라 하시고 모든 결정권은 그에게 있다 하신다. 솔직히 주인되고 싶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걸림돌이 되신다.
그래서 농부들은 끔찍한 생각을 했다. 아들을 제거하면 농지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들을 죽인다. 그 아들은 버린 돌이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버린 돌이 되실 수 있다. 이 농부들처럼 노골적으로 주인에게 반기를 들고 아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그를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몰아내고 주일날의 예배시간만이 그분이 주인되실 수 있다고 예수를 연금한다. 주일날의 예배시간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좋지만, 다른 날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것은 곤란하다. 나머지날은 내것으로 만들고 싶기에 예수를 제한한다. 예수는 종종 우리들에게 버린 돌이 된다.
아니 예배시간 마저도 예수는 우리의 주인이 되지 못하실 수 있다. 예배의 모든 이벤트가 주인되신 그분께 맞춰져 있기 보다는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져 있는 경우들을 많이 본다. 요즘에는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예수님은 예배시간 마저도 쫒겨나신 듯 보인다. 예수는 이 시대의 버린 돌이다.
그러나 우리 삶의 진정한 머릿돌은 예수가 되신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시다. 예수는 걸림돌이 되고, 우리에게 버린 돌이 되시지만, 그 예수의 기초위에서만 진정한 삶은 세워진다. 예수의 기초 위에 세워지지 않은 모든 건축물을 쓰러거나 불타버리고 만다. 예수님이 주인되시고 머릿돌이 된 인생은 굳건히 세워지겠지만, 예수 없이 세운 우리의 왕국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마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