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26:53)
능력이 있는 것과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주님은 위협당할 때 열두군단이 넘는 천군을 부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았다. 십자가에서 사람들이 조롱하는 대로 뛰어내리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사실 베드로가 칼을 휘두르듯 능력을 휘두르는 것은 유혹일 수 있다. 사단이 처음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예수님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다 보이라 했다. 돌을 떡으로 만들고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했다. 능력은 시험이 된다.
반면 예수님이 능력을 유감없이 보이기도 하셨다. 바다를 잠잠케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는 것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능력을 보여주는 케이스들이다.
예수님에게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천상의 군대를 부를 수 있으나 체포되고 십자가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베드로의 칼처럼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된다. 때로는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능력이나 스펙이나 경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칼보다 더 예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많은 재주와 능력을 가진 이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휘두르는 칼로 우리를 증명할 필요도 없다. 묵이지지란 말이 있다. 말로 하지 않고 묵묵히 있어도 알아줄 것은 알아주고 통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묵묵히 살아가면 그것이 웅변이 되고 칼이 된다. 예수님은 천상의 군단을 부르지 않고 십자가를 묵묵히 감당하셨지만, 그분은 만천하가 그분을 메시야로 고백한다.
우리는 그 길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