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슥1:2)
스가랴와 학개는 동시대 선지자로서 포로귀환 이후 예루살렘 성전건축을 지도했던 이들이다. 이들의 독려로 귀환 유대인들은 성전건축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한 스가랴의 메세지는 "돌아오라"는 말씀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이들을 돌아왔다. 바벨론 포로 이후 그들이 정착했던 땅에서 팔레스틴으로 돌아왔고 선지자들의 말에 따라 성전건축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스가랴 1:1은 다리오왕 2년 8월에 전해진 말씀인데 학개 1:1은 다리오왕 2년 6월, 즉 스가랴보다 2개월전에 예루살렘 성전건축에 대해 호소했고 성전건축을 시작한 것이 다리오왕 2년 6월 24일부터였다(학1:15). 이들은 선지자의 말을 따라 건축에 참여했다. 그로부터 약 한달후 스가랴를 통해 전해진 말씀은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활동(Activity)이 회개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한 활동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것이 회개는 아니다. 분명 회개는 입술만의 고백이 아닌 삶이 뒤따르고 삶에는 어떤 활동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활동 자체가 회개는 아니다. 성전건축은 그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명이었고 그 일은 거룩한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참여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들은 아직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활동이 기독교적 삶을 대변하는 기독교 문화 속에 살고있다. 예배도 활동이 되었고, 섬김도 활동이 되었다. 교제도 OO모임이라는 활동이 되었다. 분명 활동이 필요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활동 속에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거룩한 활동 속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가장 세속적일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경험에서도 발견하고 주변에서도 많이 목격하였다.
그런 활동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이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파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활동으로 치자면 나무랄데 없는 사람들이었다. 열심히 십일조생활하고 길게 기도하고 회당활동을 하고 안식일에 철저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중심의 악함을 공격하셨다.
어떤 활동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안위할 수 있다. 그 활동 속에 내 역할이 주도적일 때 더욱 그렇다. 활동이 내 영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영성이 빈약해도 왕성한 활동가일 수 있고, 때로는 그 빈약함을 활동으로 대치하려 한다. 그러나 결코 대치될 수 없다.
기독교적 활동이 왕성한 지금의 시대, 수많은 기독교적 활동과 집회가 많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메세지는 스가랴의 메세지인지 모른다.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