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슥7:5-6)
스가랴 시대의 귀환자들 중 벧엘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대표단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질문했다. 유대력으로 5월과 7월에 예루살렘성 파괴와 멸망 이후 잔존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그달랴의의 암살을 슬퍼하는 금식일을 지키고 있었는데, 성전을 새로 짓고 있는 이 마당에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금식일이 만들었고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번꼴로 금식일을 지킬 정도였다.
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금식과 반대로 축제일에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여기 금식일과 축제일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많은 것이 사실상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 많다. 하나님의 이름을 건 비전이 사실은 나의 야망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건 이벤트가 사실은 그저 우리들의 이벤트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건다고 다 하나님의 일은 아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그것은 너희를 위하여...너희를 위하여..." 한 것이 아니냐 하신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우리 인생이 얼마나 화려한가 소박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예수님 처럼 기도를 드릴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인생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다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나이다"(요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