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13

존귀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히5:4)

인간의 기본 욕망의 하나는 존귀라 할 수 있다. 래리 크랩은 인간의 욕망을 사랑의 욕구와 인정의 욕구로 압축하여 말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존귀의 자리에 오르고 대접받는 위치에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추구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한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불가능해보이는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소원의 자리에 이른 이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의 힘, 생각의 힘, 비전의 힘, 긍정의 힘을 외친다.

그러나 냉혹이 말해 원해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한다" 했다. 원해도 이룰 수 없는 존귀가 있다. 히브리서 본문에서의 이 존귀는 대제사장됨의 존귀다. 이 존귀는 부르심 받는 자라야 얻을 수 있는 존귀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직도 스스로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심 받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인간이 원해서 도달한 존귀의 자리는 기껏해야 인간적인 영웅담이요 감동의 주인공 정도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셔서 세우신 그 자리는 하나님의 권위가 함께하는 존엄성의 자리다. 우리가 예수의 메시아되심을 단순한 인간 성인 정도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 눈에는 나사렛의 목수정도로 여겨졌던 이가 우리 영혼의 구세주가 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부르셔서 세우셨기 때문이다.

진정한 존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온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중히 여겨야할 이유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면 자신의 사역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존엄성을 갖게 된다. 설사 그일이 빛을 보지 못하는 소박한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 존엄성이 있으면 싸구려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자기 자랑의 여지도 없어진다. 내가 원하고 애썼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셔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