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9/13

멜기세댁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7:3)

히브리서는 예수의 제사장적 모델로 구약의 멜기세댁을 든다. 멜기세댁이 모델이 된 이유는 그의 배경과 출처를 알 수 없고, 갑작스레 등장했다는 점이다. 아론 가계의 제사장들을 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뿌리가 분명하다. 반면 멜기세댁은 오리무중 같은 인물이다. 멜기세댁의 그 신비함이 그저 좋은 제사장을 넘어서 하나님께 출처를 둔 예수님과 유사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되려면 뿌리가 확실해야 했다. 포로기 이후 아론의 자손이라는 뿌리를 확인할 수 없는 제사장들이 대거 파직된 이유도 뿌리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것이 완전히 무너져 헤롯 왕가에 뇌물을 많이 바치는 자들이 대제사장이 되어 한 때 대제사장이 동시에 네명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적인 뿌리로만 설명될 수 없는 분이시다. 그의 뿌리는 나사렛의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예수님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다. 아비도 어미도 설명되지 않는 멜기세댁 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나세렛 목수로만 그를 보던 동네 사람들은 그를 끝내 부정했고 거부했지만, 베드로 같은 이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고 도마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살아온 우리의 행적은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거기에는 우리의 배경, 학위, 경험, 인맥 많은 것들이 녹아져 있다. 그러나 그것 밖에 보일 것이 없는 인생이라면 너무 빈약하다. 예수님의 행적과 뿌리는 외견상 나사렛 동네의 목수로 빈약에 보였지만, 바울은 그를 가리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라 불렀다.

논문에서는 확실히 참고할 있는 출처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객관적 출처로 담을 수 없는 신비를 담고 있어야 한다. 매일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신비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충만이 되시며 만족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베드로가 말한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즐거워하는" 신비를 누릴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멜기세댁은 샬롬의 왕으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등장했다. 어느날 갑자기 광야의 침례 요한은 메시아이 길을 준비하는 자로 등장했다. 이들은 오늘날의 스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이다. 하나님의 길을 이들에게는 그 신비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