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13

그림자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히8:5)

성경에서 그림자의 이미지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영속적인 것이 아닌 지나간다는 의미이며, 둘째는 참 형상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쓰여진다.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고(욥8:29),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시102:11) 등의 구절들은 전자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며, 히브리서의"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히8:5),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히10:1) 등은 후자의 의미에서 사용된 구절들이다.

그런데 성경이 이 그림자 이미지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적용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본 훼퍼는 누구보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인물이지만, 동시에 공동체 자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해악이라 말한 적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 땅의 공동체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그림자이다.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체는 없고 하늘의 충만함을 온전히 드러내는 천상적 공동체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섬기는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하여 배타성으로 가는 이들도 많이 보았다. 자신의 공동체를 다른 공동체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섬김과 공동체가 가장 탁월하고 중요하다고 은연 중에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떤 공동체도 참 형상이 아니다. 하늘의 것의 그림자들에 불과하다. 온전한 것이 오기 까지의 희미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라도 그림자같이 사그러지고 영향력을 잃고 심지어 존재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 서구의 교회들에서 그것을 목격했고 한국의 교회들에서 목격하고 있다.

천국과 제국은 다르다. 하나님은 구약 성전의 파괴와 이스라엘의 흩어짐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고, 흥왕했던 로마제국과 교회의 쇠퇴 속에서도 복음의 부흥을 주도해오셨다. 어거스틴은 불타는 로마 도성과 교회들을 보면서 또 다른 도성, 하나님의 도성을 생각했다. 이땅의 교회는 파괴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제국이 되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든든히 세워진다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위해 제국이 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은 작은 홀씨에서도 엄청난 생명력으로 자라갈 수 있고 세워질 수 있다.

한국 교회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한편 불편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흥왕했던 교회의 역사 속에 매여있는 것 같은 우리들의 의식이다. 우리의 섬김, 우리가 섬기는 공동체는 참 형상의 그림자들에 불과하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섬기며 온전한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천상의 예배를 아직은 맛보지 못했고, 천상의 하나님의 임재를 아직은 체험하지 못했고 천상에서 이루어질 진정한 교제를 아직은 맛보지 못했다. 아무리 큰 교회의 부흥이 오고 교회의 역사들이 있어도 우리는 역시 그림자 사역을 하는 이들임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