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copy)과 그림자라"(히5:8)
사람은 이해의 한계, 표현의 한계 속에 살아갈 수 밖애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상의 것들을 지상의 인간들에게 온전히 설명하실 수도 보여주실 수도 없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제도나 성막 등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다 말한다. 이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한계인지 모른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copy들은 의미가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말한다. 제사장제도나 성막제도 등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늠하고 예배를 배울 수 있지만 천상의 원본을 완벽히 재현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장도 한계가 있고, 첫 언약이이 있음에도 새언약을 말씀하신 것은 첫 언약 자체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며, 지상의 성막은 천상의 성막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copy본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copy를 통해 원본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 C.S.루이스는 이 땅에서 누리는 기쁨은 좋은 것들이지만,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결국은 천상의 기쁨을 가리키는 표지판 역할을 한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상의 기쁨은 천상의 copy일 수 있다. 폴란드 대통령을 지냈던 극작가 하빌은 감옥에서 쓴 '올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땅에서 우리가 갖는 갖가지 책임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누군가에 대한 책임을 상기시킨다 했다.
이것들은 천상의 것들을 가리키는 나침판이요 표지판이다. 우리는 이런 천상의 파편들을 가지고 천상에 대한 목마름을 갖게 되고 영원한 것들을 찾아가게 된다. 가정, 교회, 사랑, 교제, 예배...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들은 그것들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 해도 천상의 것이 아닌 copy들이기에 우리에게 목마름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지상의 copy들에 몰입하여 천상을 부정하거나 잊어버리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땅의 것들로 인간이 만족할 수 있었다면 예수는 오실 필요가 없으셨다. 이 땅의 제사장들로 충분하셨다면 예수는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으셨다. 옛언약으로 충분하셨다면 새언약을 말씀하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서 8:1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천상의 성소를 섬기시는 대제사장으로 묘사된 것은 그분만이 지상에서의 한계 속에 살아가며 천상의 것들에 목말라 하던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이 되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분은 copy본 속에 있는 분이 아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