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13

실패로의 부르심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40절)

히11장에는 두 종류의 믿음의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믿음으로 약속된 것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33-34절)

둘째는 믿음이 있었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35-37절)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데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결과들을 보고 어떤 이들은 약속된 것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삶은 고문과 채찍과 조롱과 결박으로 마감한다. 두 종류의 사람들이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다.

동일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되 세상적으로 "성공적인" 목회를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성공적이지 못한" 목회자가 있을 수 있다. 동일하게 믿음으로 살지만 어떤 이들은 성공적인 사업을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믿음의 양심 때문에 사업에 실패할 수가 있다.

우리는 어떤 "결과"가 있어야만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성공적 목회가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듯이 실패한 목회가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될 수도 있다. 그 실패가 우리의 게으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실패의 목회지에 가라는 부름에 순종에 기인한 것이라면 말이다.

이사야 6장의 이사야의 소명의 장면에서 하나님이 이사야를 보내시는 곳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 곳이라 하신다. 유진 피터슨은 이를 "실패로의 부르심"이라 불렀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이런 부르심을 하시는지 그 주권적인 뜻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부르심에 응한 실패는 영광스러운 실패다. 아니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고 소위 자신의 길로 "성공적인" 목회를 하였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실패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 때문에 아무런 결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고난과 채찍을 피하지 않는 이들을 가리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라 불렀다. 모두가 성공을 좆아가는데 믿음 때문에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 않고 가는 이들은 세상은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가 없다.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을 수용하기에는 이 세상의 그릇은 너무 작은 것이다. 이들은 세상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으로는 수용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사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결과를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과 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믿음이다. 그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해도 믿음의 양심을 배반하지 않는 사람들, 비록 이 땅의 교회에서 이들이 간증자로 세움받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 나라에 도달했을 때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