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13

계승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13:7)

믿음의 유산은 계승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들은 편지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인도하던 자들을 본받으라고 한다. 시제가 과거형이다. 과거에 이들을 인도하던 지도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초대교회 당시는 고정된 지도자들보다는 순회지도자들이 많았다. 한 지도자가 일정지역에서 한 동안 있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서 교회들을 돕고, 또 다른 인도자들이 와서 섬기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고 하는 순환식 지도형태를 많이 가졌다.

그래서 한 교회는 여러명의 지도자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과 베드로와 아볼로를 따르는 무리가 각각 있었던 것도 여러명의 지도자들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신앙의 여정에서 보통 여러명의 영적 인도자를 경험한다. 교회 지도자든 혹은 평신도들이든 우리에게 영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이들이 있다. 나의 경우를 보러라도 내 신앙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던 많은 분들을 헤아릴 수 있다. 혼자 크는 나무는 없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라가고 이 일은 평생동안 지속된다.

물론 그들이 완벽했던 것들은 아니다. 모든 이는 다 공과가 있고 장단점이 있다. 오늘의 성경도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본받으라고 한다. 누군가을 본받는 것은 분별력이 필요하다. 분별력이 없으면 그 약점이 내게 재생산된다.

어떤 지도자가 좋아 추종하는 이들 가운데 명백한 지도자의 잘못이 있고 문제를 야기시킴에도 그의 모든 것을 옹호하려 드는 경우들을 많이 목격한다. 영적 지도자와 권위에 대해서는 늘 존중심을 잃지 않아야 하겠지만 동시에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본받지 말아야 할 모습도 있다.

우리의 믿음은 계승되어야 한다. 그리고 믿음의 계승은 모본으로 되어진다. 성경에 "본받으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유산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영적 유산을 남길 책임도 있다. 자녀들에게, 주변의 믿음의 가족들에게, 책임지고 있는 양떼들에게 영적 유산을 남겨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행실의 결말"을 지켜볼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믿음의 유산을 남길 것인가? 이것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행실의 문제다. 결국은 "행실의 결말"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