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13

십일조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3:8)

십일조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이것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필터들 때문이다. 한가지 필터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필터이다. 즉 십일조는 구약에만 속한 문제로 보기 때문에 오늘날 이를 강조하는 것은 성경적 기초에서가 아닌 교회의 필요 때문인 것으로 보는 경우들이 많다.

또 다른 필터는 샤머니즘인 것 같다. 한국 교인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샤머니즘 혹은 종교혼합주의적 태도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신앙은 물질과는 상관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나님과 십일조를 연관시키는 것이 불편하다. 십일조를 함으로 복을 받는다는 발상에 거부감을 느낀다.

또 다른 필터는 그동안의 일부 목회자들과 교회가 보여준 실망스러운 행태와 이를 연관시키기 때문이다. 교회에 헌금해도 그 돈이 목회자의 사치와 교회의 건물에만 쓰이고 더 의미있는 곳에 쓰이지 못한다는 것이 헌금에 대해 불편을 느끼는 요소이다.

부정할 수 없는 또 한가지 필터는 우리들의 본능적 거부감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내 소유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치루는 엄청난 값지불이 있다. 그것을 내놓으라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거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필터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필터링으로 어떤 말씀은 받아들이고 어떤 말씀은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버린 말씀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말씀인지 모른다.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의 지갑이 필요없음에도 왜 십일조를 말씀하신 것일까? 십일조를 말씀하신 말라기 3:8절 바로 앞의 7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

하나님을 떠난 이들에게 돌아오라 촉구하신다. "어떻게 돌아갈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그 다음 구절 말라기 3:8의 십일조에 대한 말씀이 이어졌다. 즉 십일조의 중단을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단으로 보셨고 관계 회복은 십일조의 회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님도 십일조를 지지하셨고, 우리가 결코 버리지 말아야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십일조는 하나님과의 관계다. 이것 저것 종교적으로 나를 치장한다 할지라도 이 문제를 바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기 위해선 이 문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