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라기 4:4-5)
말라기의 마지막이자 구약성경의 마지막은 저주로 끝맺음을 한다.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의 날로 시작된 책은 "크고 두려운 날"의 예고로 마감한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으로 시작된 책은 앞으로 일어날 무시무시한 일들을 예고하는 "두렵건대" 라는 표현으로 끝난다.
창조가 역사적 사실이듯, 심판도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다. 창조가 분명히 일어났듯 죄에 대하 심판은 반드시 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며 심판의 하나님이다. 창세기가 엄중한 사실이듯, 심판 역시 반드시 일어날 사실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가지 희망을 남겨두신다. 그날이 이루기전에 누군가를 보내신다는 것. 그가 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을 하시겠다는 것. 하나님은 심판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심판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에 새로운 희망을 주셨다. 회개를 통한 구원의 길이 열렸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책이 신약성경이다. 신약성경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의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로 시작된다. 심판과 저주로 끝날 수 있는 우리 운명이 "천국"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회개하고 주께 돌아온 사람들은 마지막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신약성경의 마지막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마친다. 심판은 분명히 있지만 회개한 자들에게 그날은 오히려 희망하는 날이 된다. "크고 두려운 날"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서서"라는 희망의 날로 바뀐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