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11:13)
13절을 좀더 정확히 번역하자면, 이 사람들이 죽을 때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죽을 때에 믿음을 지켰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약속이 내 때에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멀리서 보고 환영해야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급하게 하나님을 몰아칠 때가 많다. 우리가 기도하고 믿는 바가 우리 때에 이루어져야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명이 되기나 하는 것처럼 반드시 우리 눈으로 믿음의 어떤 결과를 보고 싶어한다. 믿음 뿐이랴? 목회사역이든, 선교사역이든 내 당대에 어떤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들의 모습들이다. 히브리서의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저 믿음으로 멀리서만 보고 환영해야 할 수 있다.
우리가 구약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교훈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퍼즐 조각 하나 붙잡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요셉의 생애 자체는 위대하고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주지만 하나님의 구속사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을 보존하고 준비시키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는 출애굽을 보지 못하고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하고 애굽 땅에서 묻혔다. 그러나 그의 유언은 믿음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경우 아들을 낳게되리라는 약속은 성취되었지만, 그 후손이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것은 멀리서 보고 환영했을 뿐이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은 메시야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꿈꾼다. 그러나 그 약속이 모두 내 생애 속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그 시간대에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 뒤로 물러나기 쉽다. 약속이 허상인 것 처럼 실망할 수 있다. 우리가 꿈꾸고 소망했던 것들을 놓아버릴 수가 있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느낌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역할이 멀리서 보고 환영하는 것이라 해도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한다. 멀리서만 보고 기뻐하는 것도 믿음이다. 내 손에 무엇을 붙잡고 있지 않아도 소망을 놓지 않는 것도 강력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