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일종의 아웃사이더였다. 예수님께 직접 교육받은 것도 없었고, 사도들에게서 배우지도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의심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사도들과 바울의 만남은 바울의 복음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그에게 더해줄 것이 없었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아웃사이더들을 거부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이단시하고, 마녀재판식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카테고리는 절대불변의 우리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그것을 넘어 일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바울과 같은 아웃사이더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된다. 예수님도 당시 종교인의 카테고리에 딱 맞지 않는 아웃사이더였다.
교회의 어떤 시도가 사회적 카테고리에 잘 들어맞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비판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최초의 예루살렘 총회는 복음의 정통성과 다양성을 함께 인정한 첫 케이스였다. 그 모임에서 예루살렘의 제자들과 바울의 복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동시에 하나님이 얼마든지 다양하게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첫 복음의 기초석을 잘 놓았다. 복음에 대해선 조금도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카테고리의 사람들과도 교제의 악수를 할 수 있었다. 만일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바울을 거부해버렸다면 기독교는 엄청난 축복을 놓쳤을 것이다.
아웃사이더들은 우리의 카테고리를 넓히는 기회다. 초대교회는 아웃사이더 바울을 통해 이방인 선교에 문을 열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