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욘3:1)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일정한 패턴 속에서 일하신다. 이런 패턴이 없다면 희랍신화의 신들처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이실 것이다. 하나님은 일관된 패턴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시고, 사람들을 대하신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패턴을 발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음 반응도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인간 지혜의 한계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패턴을 알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더하기 빼기의 산술을 하는 정도를 가늠할 뿐이고 하나님은 고등수학을 넘어서는 지혜로 일하시기 때문이다.
요나서 3장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패턴을 다시 발견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요나는 불순종했고 바다에서 그의 인생이 끝나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시지만, 그를 건져내시고, 다시 그에게 말씀하신다. 1절의 "두번째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다. 첫십계를 받는 동안에도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해 돌판을 깨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돌판에 십계를 주셨다. 엘리야는 갈멜 산 이후에 죽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회복시켜 선지자 사명을 감당케 하신다. 베드로는 실패했다. 그러나 다시 기회를 주셔서 초대교회의 기둥 역할을 하게 하신다.
우리의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있어야할 자리에 반드시 세우고자 하신다. 니느웨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요나의 자리이듯, 우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자리가 있다. 지금의 우리가 그 자리에서 멀어져있고, 그간의 우리 행적이 부끄러움 뿐이며, 다시 그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합당치 않게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은 요나에게 기회를 다시 주셨듯, 우리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
이를 위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결코 잔잔한 모습이 아니시다. 요나는 바다의 풍랑 속에서, 물고기의 뱃속에서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났다. 다행히 요나는 거기서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회복의 경험은 감상적인 치유 프로그램이 아니다. 요나의 경험처럼 인생의 풍랑과 우리를 삼키는 거대한 물고기를 만나는 경험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이상하게도 마지막 선을 넘어가야 하나님을 찾는 경향이 있다.
요나서 2장을 넘어가면 3장이 기다린다. 하나님이 다시 요나를 니느웨로 가라 하시고, 거기 서게 하신다. 우리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다시 우리를 통해 일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이 기다린다. 요나의 선포를 통해 기적이 일어나는 장이 기다린다. 도망자였던 요나를 통해 한 도시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장이 기다린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