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13

거리두기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갈2:12)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 생기면 가깝게 지내던 사람과 거리를 둘 수 있다.

베드로가 그랬다. 언젠가 베드로가 최초의 비유대인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여 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것을 싫어할만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자, 함께 식사하던 그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자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 그리하고 심지어 바나바까지도 그리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내가 누구를 가깝게 하는 것이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가깝게 지내던 이와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우리들의 생존전략인지 모른다. 

유력한 자들에게 라인업을 해온 것이 인간의 역사인지 모른다. 힘있는 자들에게 모이고, 불리한 상황이 되면 가까운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거나 정적이 되는 것이 우리들의 얼굴인지 모른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의 양심의 확신과 위배되는 경우다. 

베드로는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사람이다. 사도행전 9장의 고넬료 사건을 통해서 그것을 확신했고,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총회에서 바울의 이방인 선교를 지지하며 발언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불리한 상황이 되자 자신의 주장과 반대된 행동을 했다.

베드로는 자신의 확신을 위반했다. 바울은 이것은 위선이라 고발한다. 

말은 이방인 구원을 말하면서 행동은 정반대된 행동을 했다. 그리고 함께 식사하던 이방인과 거리를 두었다.

불리한 상황이 되어도 관계를 지키는 것이 믿는 자의 도리다. 세상은 수많은 파편이 되어 이리 저리 갈라져있다. 이쪽사람과 가까우면 저쪽 사람이 싫어하고 저쪽과 가까우면 이쪽 사람이 싫어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자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갈라진 틈을 메워야했던 것이 1세기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할 몫이었고, 오늘은 또 다른 갈라진 틈을 이어주는 교량이 되어야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