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14

있음과 없음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삼상8:19-20)

언젠가 이원복씨의 글에서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을 비교하면서 한국인의 가장 큰 특징을 평등이라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말한 한국인의 평등사상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나도 평등히 가져야 하고 다른 이들이 누린 것을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못배겨낸다 했다.

삶에는 어쩔 수 없는 차별이 있다. 기회의 차별이 있고, 부와 지식과 능력의 차별이 있다. 우리는 공평한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있다. 모짜르트의 재능을 살리에르가 아무리 질투한다 해도 그의 것이 될 수 없었고,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부를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똑같이 누리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할 수도 있다. 

불평등을 고착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가진 것을 내가 갖지 못한다 해도 '없음'이 반드시 불행은 아니고, '있음'이 반드시 행복은 아니다. 때로는 '없음'이 우리의 독특성이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엔 왕이 없었고 다른 나라들에는 있었다. 오늘의 본문에서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있는 것을 자신들도 갖기를 원했다.  왕의 없음이 그들 민족의 미약함으로 여겨졌고, 강성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왕이 필요하다 요구했다.

 '없음'이 사실은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가시화하기 위해서 왕적 존재를 세우기 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들이 민족을 이끌어가게 하셨다. 불완전해보이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독특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을 가짐으로 그들만의 냄새가 사라지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있음'을 꼭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나의 '없음'이 하나님과 나의 독특한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이 되고, 우리의 비움이 하나님의 채움의 길이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왕의 자리를 비워두심으로 하나님이 그 자리를 채우시기 원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한다. "나는 나의약한 것을 자랑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