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욥20:3)
처음에 점잖게 시작한 대화가 격해졌다. 욥기 19장에서 욥은 친구들이 위로는 커녕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며 짓부수며 학대한다고 말하자, 20장에서 소발은 이것은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이라 받는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악담을 욥에게 쏟아붓는다.
욥을 똥으로 묘사하기도 하고(7절), 독사의 혀에 물려 죽고(16절), 하나님의 놋화살에 맞아 죽고(24절), 하나님의 불이 그의 집에 남은 것을 다 불태워버릴 것(26절)이라 한다.
권면이 악담으로 변했다. 말에 독이 스며들었다.
어쩌면 욥은 소발의 "역린"을 건드렸는지 모른다. 욥이 자신들의 선의를 받아들이기기는 커녕 "부끄럽게 하는 책망" 즉 그들을 모욕하는 말을 한다고 느끼자 소발의 말이 격해졌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선의의 한계인지 모르겠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오히려 상처를 받게 될 때,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명예를 짓밟는다고 느낄 때 오히려 공격자가 되고 선의가 악의가 되고, 권면은 악담으로 변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섬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섬기는 과정의 어느 장면에서 우리의 한계를 만나게 되고, 처음과는 정반대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