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욥33:16-17)
엘리후는 고난은 하나님의 경고라는 입장을 가진다. 세 친구는 고난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엘리후는 고난의 목적에 초점을 맞춘다.
세 친구는 욥의 죄가 고난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였지만, 엘리후는 경고의 신호일 수 있고, 잘못을 고치며 교만을 막으시기 위함이라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잘 못보는 경향이 있다. 남들의 티끌을 보지만 자신의 들보는 잘 보지 못한다. 어느새 나에게 쌓여있는 교만과 질투와 욕망의 실체를 전혀 보지 못하고 지낼 수 있다.
그러다가 고난을 통해 자각하는 순간이 온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문제없었던 자신 속에 곪아터진 실체를 만나게 된다.
확실히 낮을 대로 낮아져야만 보이는 세상이 있다. 고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이 고난을 통해 낮아져서 깨닫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 그래서 고난을 통해 겸손케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분명 엘리후의 관점은 새로운 것이며,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교훈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욥의 고민하는 바에 대한 대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