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욥34:36)
엘리후가 본 욥의 문제는 두가지였다.
1.자신은 의로우나 하나님은 이를 부정하시고 자신을 죄인취급한다고 여기는 것( 5-6절)
2.하나님 앞에서 경건과 도덕은 결국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것(9절)
엘리후의 입장에서 욥의 무죄주장은 하나님을 불의한 자로 여기는 것이고, 경건과 도덕의 폐기를 조장하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이에 다음과 같은 논리로 답변한다.
1.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의로우시다(10-12절).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않으시며, 공의를 굽게하지 않는다.
2.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갖고 계신다(13-16절). 온 땅의 통치자 하나님이 뜻을 정하시면 누구라도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3.그의 절대주권은 정의에 기초했기에 그의 심판은 늘 정당하다(17-30절).
하나님이 정의를 미워하시는 분이시라면 우리를 다스릴 자격이 없는 분이라고 말한 후(17절), 엘리후는 가상의 "그들"을 예를 든다. 욥기 34장은 계속 "그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정체는 왕이나 고관들, 혹은 부자들이다(18-19절).
그들이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임과 "제거"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20절) 사람들은 의아스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살피시는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이다(21-22절).
"오래 생각하실 것도 없이"(23절), "조사할 것도 없이"(24절) 그들의 모든 행위를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과 그 길을 떠난 것과 가난한 자들을 억압한 것을 알고 계시기에(27-28절) 그들을 심판하여, 그들이 "백성들을 옭아매지 못하도록" 하셨다(30절)는 것이다.
"그들"의 심판이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에게는 정당한 것이고 정의였다면, 욥에게 일어난 일도 하나님께는 정당한 것이며, 하나님은 욥이 주장하는 것처럼 불의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엘리후의 입장에서 욥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다. 회개다(31-33절). 그에게 욥은 "악인과 같이 되었고" "반역했고"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이기 때문이다(36-37절)
엘리후에게 욥은 다른 선택이 없었다. 하나님께 고통스럽게 자신의 질문을 던질 여지도 남겨두지 않았다. 엘리후의 논리 속에는 욥의 아픔이 설 자리가 없고, 너무나 명확한 진리 앞에 욥이 그저 엎드려 회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엘리후의 하나님은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 인간이 고통하고 신음할 수 있는 여지와 여백까지 남겨두지 않는 기계적인 하나님 처럼 여겨진다. 엘리후의 논리 속에는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던 그리스도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엘리후는 말한다.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그 엘리후의 모습에서 오늘의 우리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은 어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