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14

억측의 죄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욥22:5절)

욥기 22장에 들어서서 엘리바스는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는다. 욥기 대화 2라운드에서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모두 "악인론"을 펼쳤다. 악인에 대해 말했지만, 실상은 욥을 빗대 말한 것이다.

그렇게 해도 태도 변화가 없자, 더 이상 간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욥을 고발한다.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5절).

욥을 고발하는 내용은 욥이 약자들을 괴롭혔다는 것(5-8절)과 은밀한 죄를 숨기고 있다는 것(12-14절), 말씀을 멀리하고(22절), 은과 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다는 것(24-25절) 등이다.

욥은 말씀을 멀리했다는 것에 대해서만 23장에서 밝히고(11-12절) 나머지 혐의는 31장에서 자신의 결백을 밝힌다. 욥 자신의 주장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경건과 도덕성을 이미 인정하셨다(1장).

그렇다면 엘리바스의 정죄는 추측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욥기 22장을 읽어보면 추측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확신에 차있다. 마치 목격담을 말하는 것 처럼 보인다. 

엘리바스의 논리에서는 이것외에 다른 출구가 없었다. 엘리바스의 논리를 위해서는 욥은 반드시 죄인이어야 하고, 그렇게 욥의 죄를 추측하고 확신했다. 엘리바스에게 욥이 다른 출구에 있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종종 이런 억측의 죄를 범한다. 우리의 주장과 의견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죄인이 되어야 하고 그들의 죄를 추측한다. 엘리바스가 확인할 수 없었던 욥의 죄를 확신했던 것 처럼, 추정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그러나 우리의 추측은 거짓말을 잘한다. 내 눈의 진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 엘리바스가 보았던 욥은 다른 출구에 있었다.

우리가 욥기에서 배워야할 것은 세상에는 다른 출구도 있다는 것이다. 욥을 죄인이라고 몰아치지 않아도 되는 출구가 있었다.